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국-소련 국경분쟁 (문단 편집) ==== 중국의 전쟁 준비 ==== 최고조에 다다랐던 긴장은 일단 수그러들었지만 마오쩌둥은 여전히 소련의 저의를 의심하고 있었다. 국경에 대규모 소련군이 여전히 배치되어 있던 것은 물론이고 9월 11일 베이징 공항 회담 이후 발송된 소련 측 합의서는 중소 변계분쟁지역 및 쌍방 무장부대가 분쟁지역에서 접촉하지 않을 것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마오쩌둥은 소련이 변계 협상을 구실로 습격해 올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9월 17일, [[천이]], [[예젠잉]], [[쉬샹쳰]], [[녜룽전]] 등 4명의 [[원수(계급)|원수]]가 "미국이 중소 간의 모순을 이용하려 하고 소련은 중미 간의 모순을 이용하려 하는데 우리도 마땅히 미소 간의 모순을 의식적으로 인용할 필요가 있다."고 건의하였다. 예젠잉이 [[삼국지]]를 인용하며 [[제갈량]]이 [[오나라]]와 손잡고 [[위나라]]에 [[북벌]]을 거행한 것을 본받아 미국과 손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별개로 소련의 침공에 대비한 <삼선작업>에 더욱 박차가 가해졌다. 전국 각 지역에 침략을 대비하기 위한 지하도시 건설이 행해졌고 베이징에서만 85km² 규모의 지하도시가 건설되었으나 전문 공학자들을 부르주아로 몰아 숙청해버린 탓에 기술적인 설계 없이 마구잡이로 흙을 파서 공정이 이루어졌고 전국 각지에서 매몰 사고나 지반 함몰 사고가 일어나서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또한 지하대피소를 만들기 위한 벽돌 기증하기 운동이 벌어져 전국 각지에서 [[대약진 운동]] 시절의 [[토법고로]]를 되살려 벽돌 굽기가 대유행하였다. 당연하지만 급조한 가마에서 제대로 된 벽돌이 나올 리가 없었으므로 멀쩡한 집을 마구 부수어 벽돌을 조달해야 했다. 가마 역시 위험천만하긴 마찬가지라서 폭발, 붕괴 사건으로 상당수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한편 인민해방군도 경계태세에 돌입했다. 공군에 최고 수준의 경계령이 하달되었고 린뱌오가 10월 1일 국경절 행사를 틈타 소련이 베이징을 공격할지도 모른다고 베이징의 저수지에서 모두 물을 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저우언라이의 저지로 중단되었다. 마오쩌둥은 모든 공산당 간부들에게 지방으로 대피하라는 비밀 지령을 하달했고 숙청당한 간부들도 모두 지방으로 보내졌다. 천이는 [[스자좡]], 녜룽전은 [[한단]], [[류사오치]]와 쉬샹첸은 [[카이펑]], 예젠잉은 [[창사]], [[류보청]]은 [[항저우]], [[덩샤오핑]]과 [[천윈]]은 [[난창]], [[주더]]와 리푸춘은 [[광동성]] 충화현으로 피신했는데 이는 군부 내부에서 자신에 반대하는 원수들을 지방에 보내려는 린뱌오의 의도가 일부 반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중에서 예젠잉은 [[천보다]] 조사 임무 때문에 돌아왔다. 정부 기구 역시 최대한으로 축소되어 각 부처와 기구가 중국 각지로 분산되었고 [[베이징]]과 각 도시 시민들도 집과 소지품을 처분하고 시골로 대규모 피난을 떠나야 했다. 잔류한 시민들은 정부의 명령에 따라 전쟁시 대피요령, 응급처치 요령, 화재진압 요령, 소련과 미국 항공기 식별법 등을 공부하며 전쟁을 대비했다. 마오쩌둥 역시 베이징으로 돌아가지 않고 우한에 머물렀다. 오직 저우언라이만이 수도에 남아 작전 참모들과 지하 작전 상황실에서 상황을 지휘했다. 10월 17일, [[쑤저우]]에서 휴양 중이던 린뱌오는 지하벙커로 들어가서 인민해방군에게 비상경계를 발동하고 도시에서 피신하라는 제1호 명령을 전군에 하달했다. 린뱌오의 보고를 받은 [[우한]]의 마오쩌둥은 1호 명령을 승인했고 2시간 후에 인민해방군 총참모장 황융성이 전국 각지에 1호 명령을 하달했다. 100만명에 달하는 병력과 4000대의 전투기, 600대의 전함이 소련의 기습에 맞서기 위해 전략적 요충지로 이동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총격전 조금 일어난 것 가지고 전쟁이 일어나겠냐면서 혼란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생필품 품귀 현상이 일어났고 농민들은 곧 [[세계멸망|세상이 멸망할지도]] 모른다고 얼마 남지 않은 가축들을 도살하여 먹어치우기도 했다. 심지어 지하활동 중이던 반정부 조직들이 미국과 소련과 힘을 합쳐 마오쩌둥을 타도해야 한다는 민주화 운동을 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